[정우영] 치자꽃 입술/정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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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자꽃 입술/정우영
잘 키우던 강아지를 누군가가
데려가기라도 한 것처럼 허전하고 아리다.
죽어가던 치자꽃 뿌리를 갈라 살려낸 화분이어서일까.
사라진 화분 자리에 고인 잔 흙덩어리를
그리움의 잔해인 것처럼 안타깝게 문질러본다.
내 손에 닿는 감촉이 빨갛다.
혈육의 정을 그 자리에 쏟아놓고 간 것일까.
스스럼없이 떠오른 말 때문에 그만 섬뜩해진다.
내가 언제부터 사람보다 식물을 더 귀하게 여겼을까.
너덜너덜해진 아이의 주검 안고 흐느끼는
이라크 여인의 눈물이 홀연 치자꽃에 떨어진다.
치자꽃 하얀 꽃이 입술 깨물어 빨갛다.
- 정우영,『집이 떠나갔다』(창비, 2005)
잘 키우던 강아지를 누군가가
데려가기라도 한 것처럼 허전하고 아리다.
죽어가던 치자꽃 뿌리를 갈라 살려낸 화분이어서일까.
사라진 화분 자리에 고인 잔 흙덩어리를
그리움의 잔해인 것처럼 안타깝게 문질러본다.
내 손에 닿는 감촉이 빨갛다.
혈육의 정을 그 자리에 쏟아놓고 간 것일까.
스스럼없이 떠오른 말 때문에 그만 섬뜩해진다.
내가 언제부터 사람보다 식물을 더 귀하게 여겼을까.
너덜너덜해진 아이의 주검 안고 흐느끼는
이라크 여인의 눈물이 홀연 치자꽃에 떨어진다.
치자꽃 하얀 꽃이 입술 깨물어 빨갛다.
- 정우영,『집이 떠나갔다』(창비,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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