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영] 사금파리/정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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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금파리/정우영
예전에 쓰던 오래된 장롱 서랍 밑바닥에서
마음에 박혀 있던 사진 하나가 불쑥 걸어나옵니다.
사금파리 반짝이는 봉숭아 뜨락 앞에서
찢어진 꼬까 고무신이 잔뜩 주눅들어 있습니다.
그 애는 이미 능숙한 일곱살짜리 색시였습니다. 사금파리 위에 무엇을 올려놓든 화려한 밥상이 되었습니다. 그 조그마한 손놀림이 마술을 부리는지 흙은 밥이 되고 봉숭아잎은 맛있는 나물이 되었습니다. 그 애가 살짝 웃으면 나는 이미 넉넉히 배가 불러서 그 애의 무릎을 베고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매끈매끈한 무언가가 내 얼굴을 스치는 것 같아 눈떠 보면 그 애의 해사한 눈동자가 깜짝이지도 않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내 샅을 타고 찌르르 전기가 흐르고 다급해진 나는 깜짝 오줌을 지리곤 했습니다.
어느날 새벽, 스르르 사라져버린 그 애를 붙잡고 묻습니다.
너는 시방 어떤 곡절을 못 견디며 헤쳐가고 있느냐.
애장터에 꿈을 누인 사금파리 내 색시야 .
- 정우영,『집이 떠나갔다』(창비, 2005)
예전에 쓰던 오래된 장롱 서랍 밑바닥에서
마음에 박혀 있던 사진 하나가 불쑥 걸어나옵니다.
사금파리 반짝이는 봉숭아 뜨락 앞에서
찢어진 꼬까 고무신이 잔뜩 주눅들어 있습니다.
그 애는 이미 능숙한 일곱살짜리 색시였습니다. 사금파리 위에 무엇을 올려놓든 화려한 밥상이 되었습니다. 그 조그마한 손놀림이 마술을 부리는지 흙은 밥이 되고 봉숭아잎은 맛있는 나물이 되었습니다. 그 애가 살짝 웃으면 나는 이미 넉넉히 배가 불러서 그 애의 무릎을 베고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매끈매끈한 무언가가 내 얼굴을 스치는 것 같아 눈떠 보면 그 애의 해사한 눈동자가 깜짝이지도 않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내 샅을 타고 찌르르 전기가 흐르고 다급해진 나는 깜짝 오줌을 지리곤 했습니다.
어느날 새벽, 스르르 사라져버린 그 애를 붙잡고 묻습니다.
너는 시방 어떤 곡절을 못 견디며 헤쳐가고 있느냐.
애장터에 꿈을 누인 사금파리 내 색시야 .
- 정우영,『집이 떠나갔다』(창비,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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