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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고정과 회전/이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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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1회 작성일 2025-04-14 16:17:0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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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과 회전/이정록

 들어올 때는 국밥집하고 순댓국집이 같은 식당인 줄 몰랐지? 자네 내외처럼 식당 앞에서 옥신각신하다가 다른 문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어. 이 문으로는 소머리국밥 먹겠다고 씩씩거리며 들어오고 저쪽 문으로는 순대가 땡긴다고 돼지 꼬랑지처럼 꼬부라져서 들어오지. 처음엔 병천순대집이었지. 국밥집에 세를 줬는데 파리만 날리다가 나가 버렸어. 머리 잘 돌아가는 내가 벽을 터버렸지. 지 먹을 것 따라서 따로 들어왔다가 멋쩍게 한 탁자에 앉는 사람들 많어.

 그만 좀 웃어. 에어컨 한대 갖고 당최 시원해야지. 쓰레기장에서 벽걸이 선풍기를 주워왔는데 회전이 안되는 거여. 며칠 뒤 한대를 또 주워왔는데 요번엔 고정이 안돼. 그래 메뉴판 옆에 나란히 걸어놓고 명찰을 붙여줬지. 왼쪽 놈은 "회전이 안돼요." 오른쪽 것은 "고정이 안돼요." 생각해봐. 인생도 회전과 고정, 아니겄어. 멧돼지처럼 고정 못하고 돌진하다가 잘못되는 꼴 많잖어. 또 잔머리만 굴리다가 순대 속같이 잡스러워지는 거 아니겄어. 저 선풍기 때문에 손님이 늘었어. 하나만 걸려 있으면 고장난 선풍기지만, 둘이 붙어 있으니께 친구같고 부부 같잖어. 동서니 남북이니 하는 것도 서로 끄덕끄덕, 살랑살랑, 시원한 바람을 한통속으로 섞으면서 살아야지. 우리 부부도 녀석들 때문에 별명이 생겼어. 내가 회전댁이고 우리 집 양반이 정지아저씨여. 아저씨가 오토바이광(狂) 이거든. 그저 돌진이여. 나야 얼굴 예쁘고 몸매 좋아서 쟁반이고 나가면 사내들 눈알이 팽팽 돌아가지. 귀가 밝아서 눈알 돌아가는 소리까지 다 들려.

 선풍기 밑에 나란히 서봐. 기념사진 하나 박아줄게. 고장난 선풍기도 저렇게 짝이 있는 거여. 둘이 끄덕끄덕 잘살어. 메뉴 하나 양보 못하고 다른 문짝으로 들락거리지 말고. 고정과 회전이 연애고, 정치 경제고, 세상 모든 책이여. 근데 안식구가 쎅시하게 생긴 게 고정이 잘 안되겠네. 국밥 좀 많이 잡숴야겄어. 나갈 때 갈비하고 등뼈 좀 끊어가. 정지버튼이 안 먹히는 바가 있어야 사내답지. 그만 좀 웃으라니께.

-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창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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