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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무] 지병처럼 찾아오는 것들/이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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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2회 작성일 2025-04-12 19:22:1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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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병처럼 찾아오는 것들/이재무

골목길 사라지면서 덩달아 사라진 것들 많다
좁은 골목을 사이로 다닥다닥 키 작은 집들
건넛집 술 취한 가장의 코 고는 소리가
반쯤 열린 철 대문을 빠져나와
홀로된 지 오래인 과부의 홑치마 속 파고드는 것이며
비 오는 날 이웃집에서 굽는 고등어구이 냄새가
블록 담을 넘어와 공복 위로 스멀스멀 기어오르던 것이며
백내장 앓아대던 가등 아래 서로의 더운 숨결 탐하던
늦은 밤의 연인들 실루엣이며
온갖 소리와 넝쿨들 온갖 색깔 범벅의 냄새들
주인 몰래 몰려나와 저희끼리 희희낙락 짝짓기 하던,
우리들 한때 생의 자궁이었던 그곳
날 흐리면 지병처럼 찾아오는 것들
골목길 사라지면서 덩달아 사라진 것들 많다

 -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실천문학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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