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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무] 큰비 다녀간 산길/이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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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35회 작성일 2025-05-30 11:38: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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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비 다녀간 산길/이재무

큰비 다녀간 산길 걸을 때 나는
작은 山이 된다 산꽃이 된다
돌멩이 거칠고 많아도 맨발 아프지 않고
넘어져 무릎 다쳐도 생피 겁나지 않는다
공기는 탁구공처럼 둥글고, 탄력이 있고,
내 몸은 바람 많이 든 공처럼 자주 튀어오른다
맘먹고 구르면 어쩌면 하늘까지 솟아오를 것 같다
이렇게 큰비 다녀간 산길, 그 어떤 발자국의
흔적조차 남지 않은 최초의 길을 오롯이
걸을 때만큼은 마을에 두고 온 잡사며 그토록
오랫동안 마음 끓인 이별이며가
길가 풀잎에 남은 물방울처럼
조금 안쓰러울 뿐, 이제 방금 가지 떠나
저 길 안쪽으로 울음 흩뿌리며 사라지는
새의 날갯짓처럼 그저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것이 된다 그렇게 영혼에 남은
부스럼딱지가 여물어 떨어지는 것이다

- ​『위대한 식사』(세계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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