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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권] 아내의 맨발 8/송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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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4회 작성일 2025-05-30 17:37:4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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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맨발 8/송수권

아내를 병원에 두고 내려와
內衣 한 벌을 찾던 중
장롱 밑바닥 오래된 손가방 속에서
낡은 수첩들을 발견했다
그것은 20년 동안 사람과 사람을 접속했던
사람 냄새로 얼룩진 보험 장부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누비고 다니며
사람과 부대끼며 사람과 더불어 닳아진
전화번호들과 함께 곰팡이꽃이 피어
녹록했다
네 귀퉁이가 회치회치 닳고 종이 보푸라기가
푸수수했다
낡고 휘느스름한 그 수첩들에는 고리고리한
곤쟁이젓 같은 썩은 세월이
아내의 시간들이었음을 말해주었다

어디서 왔다 가는 줄도 모르는 그 사람들 위로
다시 아내의 맨발이 지나가고 바람이 지나가고
또 초롱한 별들이 떴다가 자물렸다
쓰다 버린 도끼날에도 녹물이 끼어 쟁쟁하듯이
쓰다 버린 그 수첩들 위에도
아내의 향기는 쇠꽃으로 피어서
물컹, 물컹했다.

-  『아내의 맨발』(고요아침,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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