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 어쩌다 꿈에 보는/신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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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꿈에 보는/신경림
복사꽃이 피어 있었을 거야.
장마당 앞으로 길게 강물이 흐르고 강물 위로는 안개가 피어나고.
사람들은 모이고 흩어지면서 웅성웅성 뜻 모를 말들을 주고받고
나는 덜렁덜렁 사람들 사이를 어슬렁거리면서 즐거워도 하고 슬퍼도 했지.
어디선가 물새도 울었어, 아침인데도 닭들이 홰를 치고.
나는 노새였던가, 아니면 나귀였던가.
어쩌다 꿈에 보는 이것이 내 전생일까!
나는 나무가 되는 꿈을 꾸는 일도 있다.
낮이고 밤이고 여름이고 겨울이고 바람과 눈비에 시달리면서
안타까이 그 전생의 나만을 추억하고 있는 꿈을.
조금은 거짓되기도 하고 또 조금은 위선에 빠지기도 하면서
그것이 부끄러워 괴로워도 하고 또 자못 안도도 하던 전생의,
그것이 억울하고 한스러워 밤새 잠을 이루지도 못하던
그 전생의 나만을 추억하고 있는 나무가 되는 꿈을.
어쩌다 꿈에 되는 이 나무가 내생일까!
- 『낙타』(창비, 2008)
복사꽃이 피어 있었을 거야.
장마당 앞으로 길게 강물이 흐르고 강물 위로는 안개가 피어나고.
사람들은 모이고 흩어지면서 웅성웅성 뜻 모를 말들을 주고받고
나는 덜렁덜렁 사람들 사이를 어슬렁거리면서 즐거워도 하고 슬퍼도 했지.
어디선가 물새도 울었어, 아침인데도 닭들이 홰를 치고.
나는 노새였던가, 아니면 나귀였던가.
어쩌다 꿈에 보는 이것이 내 전생일까!
나는 나무가 되는 꿈을 꾸는 일도 있다.
낮이고 밤이고 여름이고 겨울이고 바람과 눈비에 시달리면서
안타까이 그 전생의 나만을 추억하고 있는 꿈을.
조금은 거짓되기도 하고 또 조금은 위선에 빠지기도 하면서
그것이 부끄러워 괴로워도 하고 또 자못 안도도 하던 전생의,
그것이 억울하고 한스러워 밤새 잠을 이루지도 못하던
그 전생의 나만을 추억하고 있는 나무가 되는 꿈을.
어쩌다 꿈에 되는 이 나무가 내생일까!
- 『낙타』(창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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