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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원] 치자꽃/송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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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5회 작성일 2025-04-18 10:34:3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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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자꽃/송기원

보길도 윤선도 유적지 옆에는 작은 초등학교가 있는데요.
남해안 땅끝에서도 더 아래로 내려온 섬학교답게
아열대성 상록수들만 무성한 화단이 있는데요.
화단에 가득가득히 치자꽃들이 한창이어서
교정 전체가 치자꽃 향기에 싸여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를 벗어나 들샘머리에 이르러
두 손으로 샘물을 길어 올렸더니
넘쳐나는 치자꽃 향기가 손바닥에도 고였습니다.
들샘머리 콩밭에서 김을 매던 할머니가
잠깐 일손을 놓고 나에게 말을 걸어왔는데요.
"쩌그 뾰쪽산에 가먼 섬들이 가랑잎처럼 둥둥 떠있고
이쁜 디가 많은디 육지사람덜은 몰르고 가뿌러라우."
일흔 가까운 주름살 투성이로 수줍게 웃어 보이는
할머니의 얼굴에서도 치자꽃 향기가 풍겨왔습니다.
그대여, 얼마나 오래 숨어살면서 그대에게 가는 길을 찾아야
그대는 치자꽃 향기처럼 나에게 풍겨올는지요.

 -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랜덤하우스중앙,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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