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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향림] 수레 위의 잠/노향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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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4회 작성일 2025-04-14 15:32:5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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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 위의 잠/노향림
- 난쏘공 4

산동네 한적한 뒷골목 짐수레 위에서
주름투성이의 한 남자가 곤한 낮잠에 빠져 있다.
닳은 구두 굽에 구멍이 나 있다.
점퍼 사이로 늘어뜨린 얇은 전대로 보아
꽃나무들이 팔리지 않았나보다.
팔다 만 관음죽 스킨답스 수레국화
싱싱한 화분들이 초록 담장을 치고 있다.
베개 삼은 짧은 조막손에 움켜쥔 마이크
살짝만 건드려도 말이 터져나올 것 같다.
나는 바닥에서만 살았으니 바닥에 익숙해요.
고되고 허기진 잠은 깊고 깊어
내 작은 몸뚱이가 허공처럼 커지는 꿈을 꾸어요.
침 흘리며 하늘 향해 벌린 입
숨겨놓은 독백이 무방비로 풀려나올 것 같다.
게으른 시간만 느릿느릿 주위를 맴돌다가
햇볕에 그을린 그의 얼굴 위로 툭 떨어진다.
버즘나무 한입의 단꿈 속에 힘겨운 하루를 벗고
살랑거리는 초록 담장 너머
보랏빛 영롱한 선인장 꽃 찾아서
해와 낙타가 있는 머나먼 서역
모래바람 속을 건너지만
지나가는 누구도 그의 사막을 들여다보지 못한다.

-  ​『푸른 편지』(창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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