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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 한 명의 육체를 위하여/김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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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417회 작성일 2025-02-07 15:14:2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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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육체를 위하여/김기택

달려가던 승용차가 가볍게 들어올리자
사내는 조금도 꾸밈이 없는 동작으로
빙그르르 공중에서 몸을 돌리고
전혀 무게를 두려워하지 않고
아스팔트 위로 내리꽂혔다
얇은 가죽으로 막아놓은 60킬로그램의 비린내
안에 들어있던 분노와 꿈이
일제히 터진 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모든 것은 미리 준비해놓은 것처럼
신속하게 완벽하게 제 위치를 찾아갔다
꿈은 흰 쌀밥 위를 오르는 김처럼
모락모락 공손하고 착하게 흰 골을 떠나
거대한 스모그 속으로 스며들었고
분노는 아스팔트 갈라진 틈을 따라
하수도 속으로 얌전하게 흘러 들어갔다
크고 믿음직스런 두 손이 있었으나
체온이 있을 동안만 가늘게 떨었을 뿐
곧이어 차고 뻣뻣한 힘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누군지 아침부터 해장 한 번 잘했군
지나가던 버스 운전사가 킬킬거렸고
손바닥으로 반쯤 가려진 얼굴들이
킁킁거리며 비린내를 향해 몰려왔다
손가락 끝으로 발가락 끝으로
핏줄의 끝 수만 뿌리 모세혈관으로
모여 기지개가 되고 주먹이 되고
눈동자 속으로 빛이 되어야 할 힘들이
해골을 뚫고 풀어져 사방으로 흩어져 간 후
사내는 이제 진짜 육체가 된 것이다
무기력하고 아무 할 일도 없어 마냥 착하기만 한 육체
천국에 사는 사람들처럼 순한 육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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