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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근] 석류/정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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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5회 작성일 2025-05-30 17:02:4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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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정병근

석유를 석류로 읽던 친구가 있었지
'석유'하고 선생이 때려도 '석류'하던 그 친구
유난히 붉은 잇몸을 감추고 있었지
입안 가득 핏물을 머금은 채 묵묵히 귀뺨을 맞던
그 친구, 어느 날 사망 부음이 인터넷을 떠돌 때
나는 그의 두터운 잇몸이 생각났지
늦가을 파란 대문 너머 익어가는 석류는
그의 죽음처럼 낯설어 '석류' '석유'
하고 몇 번이나 되뇌어보았지
또 세월이 지나,
전쟁이 휩쓸고 간 사막의 어느 골목에서
석류 파는 여인을 보고 번개처럼 알았지
불타는 유전의 검은 연기를 배경으로
잇몸을 보이며 웃고 있는 여인
핏물이 굳어지면 저렇듯 두터운 잇몸이 된다는 것을
석류는 잇몸이 빛나는 과일임을
그리고, 석류는 석유와 가까운 과일임을

- 『번개를 치다』(문학과지성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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