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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문] 이사/장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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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8회 작성일 2025-04-14 15:56:1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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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철문

아버지와 어머니의 집을 나선다
책과 책상을 꾸리고
옥상에서 내려온 장독 몇개를 받아서​

그 중에서 눈곱만큼 살림이 펴면서
헌옷만 입고 헌책만 보고
헌책상만 썼다고
눈물바람으로 사주신 책장과
옷가지도 있다​

테이프로 봉해진 사과박스 속에는
아버지의 필사본 『동국사기』와
할아버지의 생계를 달았던 저울도 있다​

어머니는 짐칸 난간을 붙들고
잘 살아라, 잘 살아라 하지만
당신은 곧 아들이 없는 방을 보게 될 것이다​

당신 곁을 떠나서 몇년,
몇번의 이사에도
서른세 해 하루도 이 집을 떠난 적이 없는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아버지가 들어나르고
어머니가 지은
한채의 집인지도 모른다​

내가 이렇게 미끄러져 가듯이
당신도 당신의 한채의 집을 떠나보내는 것이다

 ​- 『산벚나무의 저녁』(창비,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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