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일] 맨드라미/이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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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드라미/이병일
화단 앞에서 수탉 두마리가 싸우고 있다. 땅을 박차고 허공을 날며 서로 대가리를 콕콕 쪼아대는데, 벼슬에서 피가 잔모래처럼 쏟아진다. 싸움에는 퇴로가 없다. 기세등등한 부리가 화살이자 곧 과녁이다. 장벽으로 마주 보고 있다가도 다시금 치고받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생을 벼랑으로 밀고 가는 싸움이겠다. 급기야 수탉이 이승 너머까지 나아가는 줄 알고 비명을 지른다. 수탉의 대가리에서 붉디붉은 맨드라미 활짝 핀다. 그때 대숲에서 은둔하던 족제비 부부가 수탉 한 마리씩 물고 논길로 사라진다. 한 됫박의 피 흘리고 간 수탉의 저승길처럼 화단의 맨드라미가 막무가내 꽃피우는 일도 혼곤하겠다.
-『창작과 비평』 142호(2008년 겨울호)
화단 앞에서 수탉 두마리가 싸우고 있다. 땅을 박차고 허공을 날며 서로 대가리를 콕콕 쪼아대는데, 벼슬에서 피가 잔모래처럼 쏟아진다. 싸움에는 퇴로가 없다. 기세등등한 부리가 화살이자 곧 과녁이다. 장벽으로 마주 보고 있다가도 다시금 치고받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생을 벼랑으로 밀고 가는 싸움이겠다. 급기야 수탉이 이승 너머까지 나아가는 줄 알고 비명을 지른다. 수탉의 대가리에서 붉디붉은 맨드라미 활짝 핀다. 그때 대숲에서 은둔하던 족제비 부부가 수탉 한 마리씩 물고 논길로 사라진다. 한 됫박의 피 흘리고 간 수탉의 저승길처럼 화단의 맨드라미가 막무가내 꽃피우는 일도 혼곤하겠다.
-『창작과 비평』 142호(2008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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