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이사 전날/이승하
페이지 정보
본문
이사 전날/이승하
손때 묻은 가구를 마저 버린다
처박혀 있어 처음 보는 그릇과 냄비도 버리고
구석구석 쌓인 기억의 먼지와도 마침내 이별이다
창을 열면 다가오던 뒷산 산허리
내 눈길로 어루만져 주곤 했는데
집 앞에서 우두커니 날 기다리던 단풍나무
잎사귀의 색깔로 계절을 알았는데
나 이 집 팔고 너희 곁을 이제 떠난다
어머니는 이삿짐을 싸지 못했다
이빨 빠진 접시도 맞지 않는 옷도
버리지 못해 또 만져보고 또 만져보고
조만간 허물어질 언덕배기의 집
물지게를 버릴 수 있어 우린 마냥 좋았는데
첫아기 안고 들어온 이 집을 떠나는구나
내일이면 저 천장이 다른 천장일 텐데
마음은 언제까지나 이 집 근처를
배고픈 승냥이처럼 떠돌 것 같다
- 『생애를 낭송하다』(천년의시작, 2019)
손때 묻은 가구를 마저 버린다
처박혀 있어 처음 보는 그릇과 냄비도 버리고
구석구석 쌓인 기억의 먼지와도 마침내 이별이다
창을 열면 다가오던 뒷산 산허리
내 눈길로 어루만져 주곤 했는데
집 앞에서 우두커니 날 기다리던 단풍나무
잎사귀의 색깔로 계절을 알았는데
나 이 집 팔고 너희 곁을 이제 떠난다
어머니는 이삿짐을 싸지 못했다
이빨 빠진 접시도 맞지 않는 옷도
버리지 못해 또 만져보고 또 만져보고
조만간 허물어질 언덕배기의 집
물지게를 버릴 수 있어 우린 마냥 좋았는데
첫아기 안고 들어온 이 집을 떠나는구나
내일이면 저 천장이 다른 천장일 텐데
마음은 언제까지나 이 집 근처를
배고픈 승냥이처럼 떠돌 것 같다
- 『생애를 낭송하다』(천년의시작, 201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