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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환] 개옻나무 종만이/이봉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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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58회 작성일 2025-05-02 11:28:2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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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옻나무 종만이/이봉환

가을바람 불면 누구보다 먼저 수줍던
개옻나무를
아무도 눈여겨봐주지 않았지
냄새 난다고 킁킁거리고 옻오를까 봐
흠칫 경계하며 친구들 저만치 피해만 다녔지
홀어미의 가난 밑에서 겨우 구구셈이나 마치고
돈벌이 떠난 국졸이 최종 학력인 동창생 종만이
늘 간이나 보고 마음은 통 안 주는 도회 사람들 틈에서
소똥 개똥 안 가리고 닥치는 대로 굽실굽실 막일해댔지
쓰레기 매립장 척박한 땅에 악착같이 뿌리내렸지
삼십 년 바지런히 트럭 몰아 산지사방을 휩쓸고
그 사이 다복다복 이룬 잡목 숲에서 고라니 새끼들이 뛰고
아내는 단 한 푼도 금쪽 마냥 쟁여 모았지
오십 다 된 나이에 추석 쇠러 불쑥
고향에 나타난 개옻나무 종만이
동네 어르신들 잡수시라고
즐겁게들 먹고 노시라고
맥주와 소주 한 상자에다가 돼지 한 마리 내놓는다
연신 술을 따르며 귓불 벌게진
개옻나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동네 어른들을 대접한다
모처럼 저도 고향에서 사람대접 한번 받는다
그려, 그려, 종만이가 죽지 않고 살아 있었구먼
아들 딸 낳고 집 장만하고 훌륭히도 장성했구먼

- ​『밀물결 오시듯』(실천문학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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