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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호] 서산마애삼존불/이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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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3회 작성일 2025-04-20 20:15: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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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마애삼존불/이경호

쓸데없는 말이 튀어나오려는 날이면
골짜기 하나 먹고 싶어진다
알면서도 모든 사연 폭포에 묻고
모르는 척 하늘을 여백으로 둘 줄 아는
풍경 하나 먹고 싶어진다
느티와 붉나무가 언제 눈이 맞았는지
그 후손이 누구인지
무지개 피라미가 누구네 돌담으로 들어갔는지
서론이 긴 사람이 어떻게 본론으로 걸어갔는지
태양의 말씀을 누가 차근히 받아 적었는지
다 알고 있지만 침묵하는 여기에서
바지도 젖고 가슴이 젖는, 그렇게
옛 스님들도 젖다 갔을 여기에서
아침을 알리던
닭 모가지 자른 중생이 누군지 알면서도
탓하지 않는 여기에서
아침이 그렇게 사라져도
냉수 한 사발 찾지 않고 그저 웃기만 하는 여기에서
내가 무슨 말을 참고 있는지
다 알고 있는 여기에서
다 알고 있어서 붉어지는 초록에게 눈짓하면서
미소 한 덩이가 먹고 싶어진다

- 『비탈』(도서출판 애지,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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