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록] 수선화/이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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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이정록
- 어머니 학교 71
텃밭 둑이 자꾸 무너져야.
아버지가 백 년 묵은 탱자나무 둥치를
팔아치운 뒤로 흙탕눈물을 내뿜는 거지.
머위도 심고 호박덩굴도 늘여봤지만 허사야.
그래 골똘히 생각해보니까, 답은 수선화여.
해마다 멍석 테두리를 넓혀가는 수선화를
둥글게 떼어내서 탱자나무 섰던 데부터
늙은 감나무 밑동까지 꿰매 붙였지.
수선화가 피어서는 감나무 새잎을 올려다보면
반짝반짝 감나무 이파리들이 간지러워 죽으려고 해.
그럼 좀 있다가 감꽃이 노랗게 피어서는
꽃진 수선화 위로 훨훨 흩뿌리는데 꼭 사랑을 주고받는 것 같아.
달빛 내릴 때 보면 삼삼하니 아버지 생각이 사무쳐야.
맥주 한잔에 내가 왜 이리 수선 떠나 모르겄다.
하여튼 무너진 데 수선은 수선화가 최고여.
탱자처럼 시고 떫은 인생 남겨준 것도 아버지니께
산소에 갈 때 몇 뿌리 옮겨놓든지.
- 이정록, 『어머니 학교』 (열림원, 2012)
- 어머니 학교 71
텃밭 둑이 자꾸 무너져야.
아버지가 백 년 묵은 탱자나무 둥치를
팔아치운 뒤로 흙탕눈물을 내뿜는 거지.
머위도 심고 호박덩굴도 늘여봤지만 허사야.
그래 골똘히 생각해보니까, 답은 수선화여.
해마다 멍석 테두리를 넓혀가는 수선화를
둥글게 떼어내서 탱자나무 섰던 데부터
늙은 감나무 밑동까지 꿰매 붙였지.
수선화가 피어서는 감나무 새잎을 올려다보면
반짝반짝 감나무 이파리들이 간지러워 죽으려고 해.
그럼 좀 있다가 감꽃이 노랗게 피어서는
꽃진 수선화 위로 훨훨 흩뿌리는데 꼭 사랑을 주고받는 것 같아.
달빛 내릴 때 보면 삼삼하니 아버지 생각이 사무쳐야.
맥주 한잔에 내가 왜 이리 수선 떠나 모르겄다.
하여튼 무너진 데 수선은 수선화가 최고여.
탱자처럼 시고 떫은 인생 남겨준 것도 아버지니께
산소에 갈 때 몇 뿌리 옮겨놓든지.
- 이정록, 『어머니 학교』 (열림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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