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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진] 물오징어를 다듬다가/유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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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6회 작성일 2025-04-12 19:50:0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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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오징어를 다듬다가/유안진

네 가슴도 먹장인 줄 미처 몰랐다
무골호인(無骨好人) 너도 오죽했으면
꼴리고 뒤틀리던 오장육부가 썩어 문드러진
검은 피 한 주머니만 껴안고 살다 잡혔으랴
바닷속 거기도 세상인 바에야
왜 아니 먹장가슴이었겠느냐

나도 먹장가슴이란다
연체동물이란다
간도 쓸개도 배알도 뼛골마저도 다 빼어주고
목숨 하나 가까스로 부지해왔단다
목고개 오그려 쪼그려
눈알조차 숨겨 감추고
눈먼 듯이, 귀먹은 듯이, 입도 없는 벙어린 듯이
이 눈치 저 코치로
냉혹한 살얼음판을 어찌어찌 헤엄쳐왔단다

비늘옷 한벌 없는 알몸으로 태어난 너도, 나와 다름아니다. 남의 옷 한가지 탐낸 적 없이 맨몸으로 살았던 너의 추위 너의 서러움을 나도 안다, 알고 있는 우리끼리 이렇게 마주친 희극적 비극의 비극적 우연도, 어느 생애 지어 쌓은 죄갚음이라 할 건가.

  - 『다보탑을 줍다』(창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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