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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규] 에쿠스/이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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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39회 작성일 2025-04-08 10:15:0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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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스/이덕규

가을밤, 저수지 공원 주차장 구석
번쩍이는 검은 에쿠스 승용차 한 대가 얌전하게 공회전하고 있다
암내 맡은 고양이처럼 가르릉거리며
완전 연소된 가솔린 배기가스를 페로몬 향기처럼 자욱하게 퍼뜨리고 있다
온 힘을 다해 납작 엎드려 있던 에쿠스가
한밤의 어색한 정적에게 조용히 귀엣말을 건네듯이 나직나직 흔들린다
속삭이듯 가만가만
부드럽게 흔들리다가 드디어 올라간다
둥실둥실 검은 승용차 에쿠스 한 대가 그대로 공중부양하고 있다
흔들흔들 둥실둥실
안팎이 온통 캄캄한 에쿠스 한 대가
새카만 유리 속에 오직 환한 보름달만이 둥싯 떠가는 에쿠스가
까마득 허공으로 올라가다가 한순간
온몸 근육이 돌덩이처럼 굳는 짐승처럼 우뚝 멈췄다가 기우뚱,
다시 천천히 내려오고 있다
곁에 서 있던 키 큰 은사시나무가 물관을 따라 우듬지까지 밀어올렸던 오직 한 생각을 그만
절정의 가지 끝에서 부르르 털어버리자
둥근 밀크 항아리 기울어지듯 꽉 찬 달빛이,
달빛이 부드럽게 검은 에쿠스 승용차 위로 가득히 부어지는 밤이다

 - 이덕규,『놈이었습니다』(문학동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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