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영] 지상의 방 한칸/이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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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방 한칸/이시영
신림 7동, 난곡 아랫마을에 산 적이 있지. 대림동에서 내려 트럭을 타고 갔던가, 변전소 같은 버스를 타고 갔던가. 먼지 자욱한 길가에 루핑을 이고 엎드린 한칸 방. 누나와 조카 둘과 나의 보금자리였지. 여름밤이면 집 앞 실개천으로 웃마을 돈사의 돼지똥들이 향기롭게 떠가는 것을 보며 수제비를 먹었지. 찌는 듯한 더위에 못 이겨 야산에 오르면 시골처럼 캄캄하던 동네, 개천 건너 그 동물병원 같은 보건소는 잘 있는지 몰라. 눈이 크다란 간호원에게 매일 아침 붉은 엉덩이를 내리고 스트렙토마이신을 한대씩 맞고 다녔지. 학교가 너무 멀어 오전 수업을 늘 빼먹어야 했던 집. 아니 결핵을 앓던 나를 따스히 보살펴 주던 집. 겨울이면 루핑이 심하게 울어 조카의 어린 몸을 난로처럼 안고 자던 방. 아니 봄을 기다리던 누님과 나의 지상의 좁은 방 한칸.
- 이시영,『은빛 호각』(창비, 2003)
신림 7동, 난곡 아랫마을에 산 적이 있지. 대림동에서 내려 트럭을 타고 갔던가, 변전소 같은 버스를 타고 갔던가. 먼지 자욱한 길가에 루핑을 이고 엎드린 한칸 방. 누나와 조카 둘과 나의 보금자리였지. 여름밤이면 집 앞 실개천으로 웃마을 돈사의 돼지똥들이 향기롭게 떠가는 것을 보며 수제비를 먹었지. 찌는 듯한 더위에 못 이겨 야산에 오르면 시골처럼 캄캄하던 동네, 개천 건너 그 동물병원 같은 보건소는 잘 있는지 몰라. 눈이 크다란 간호원에게 매일 아침 붉은 엉덩이를 내리고 스트렙토마이신을 한대씩 맞고 다녔지. 학교가 너무 멀어 오전 수업을 늘 빼먹어야 했던 집. 아니 결핵을 앓던 나를 따스히 보살펴 주던 집. 겨울이면 루핑이 심하게 울어 조카의 어린 몸을 난로처럼 안고 자던 방. 아니 봄을 기다리던 누님과 나의 지상의 좁은 방 한칸.
- 이시영,『은빛 호각』(창비,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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