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저녁/이홍섭 > 아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오늘
166
어제
1,565
최대
3,544
전체
299,478
  • H
  • HOME

 

[이홍섭] 배고픈 저녁/이홍섭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이창민 조회 49회 작성일 2025-04-06 16:49:36 댓글 0

본문

배고픈 저녁/이홍섭

1
어릴 때, 강 건너 산 위에 화장터가 있었다
이따금 연기가 피어오르면
지나가는 구름도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곤 했다
구름이 다시 가던 길을 가면 배고픈 저녁이 왔다

2
어머니는 길 떠나는 외할머니 관 위에 손을 얹으시고는
깊은 산속 나뭇가지 끝에서 우는 새처럼
높고 긴 울음을 우셨다
그날 이후 새소리는 다 슬펐다

3
스님, 불 들어갑니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무덤 하나가 불을 껴안고 타올랐다
밤새 홀로 묻고 홀로 답하느라 온통 붉어진 집 한 채
새벽이 되자 그마저 재가 되었다

4
구름이 다시 가던 길을 가는 저녁
새는 나뭇가지 끝에서 울고
서쪽 하늘은 불 먹은 듯 붉게 타오른다
배고픈 소년 하나가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가는 길

- 이홍섭,​『검은 돌을 삼키다』(달아실출판사, 201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ITE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