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섭] 백 원짜리 면도기/이홍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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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원짜리 면도기/이홍섭
플라스틱 바가지에 물 한 바가지 떠 놓고
백 원짜리 면도기로 노스님의 머리를 깎아드린 적이 있습니다
아주 먼 먼 어느 날, 지금의 나보다 몇 곱절이나 어린 나이에 집 떠난
노스님의 머리는 천봉만봉 내설악을 닮았습니다
백 원짜리 면도기는 계곡을 오를 때마다 고목의 밑동을 제대로 자르지 못해
암벽에 핏자국을 남기곤 했습니다
물 한 바가지가 벌겋게 물들 때까지 삭도질은 계속되었지만
노스님은 칼을 맡긴 채 멈추라는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백 원짜리 면도기를 볼 때면, 그 깊은 내설악 골짜기와
몰래 내다버린 붉디붉은 피 한 바가지가 떠오릅니다
- 이홍섭, 『검은 돌을 삼키다』 (달아실출판사, 2017)
플라스틱 바가지에 물 한 바가지 떠 놓고
백 원짜리 면도기로 노스님의 머리를 깎아드린 적이 있습니다
아주 먼 먼 어느 날, 지금의 나보다 몇 곱절이나 어린 나이에 집 떠난
노스님의 머리는 천봉만봉 내설악을 닮았습니다
백 원짜리 면도기는 계곡을 오를 때마다 고목의 밑동을 제대로 자르지 못해
암벽에 핏자국을 남기곤 했습니다
물 한 바가지가 벌겋게 물들 때까지 삭도질은 계속되었지만
노스님은 칼을 맡긴 채 멈추라는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백 원짜리 면도기를 볼 때면, 그 깊은 내설악 골짜기와
몰래 내다버린 붉디붉은 피 한 바가지가 떠오릅니다
- 이홍섭, 『검은 돌을 삼키다』 (달아실출판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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