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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악] 전라도 가시내/이용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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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340회 작성일 2025-01-13 15:49:5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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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가시내/이용악(李庸岳)

알룩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 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굴
가시네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젠 무섭지 않다만,
어두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 미더운 북간도 술막.
 
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
눈포래를 뚫고 왔다.
가시내야,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
가난한 이야기에 고이 잠궈다오.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두 외로워서 슬퍼서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리미처럼 울어 울어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차알삭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 없이 새기는 보조개.
가시내야,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 줄게.
손때 수줍은 분홍 댕기 휘 휘 날리며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이윽고 얼음길이 밝으면
나는 눈포래 휘감아치는 벌판에 우줄우줄 나설 게다.
노래도 없이 사라질 게다.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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