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상점/임지은 > 아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오늘
739
어제
974
최대
3,544
전체
355,556
  • H
  • HOME

 

[임지은] 기분 상점/임지은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이창민 조회 5회 작성일 2025-06-30 16:35:40 댓글 0

본문

기분 상점/임지은
  ​ 
창문을 여는데
죽은 새를 만져 본 것 같았다
 
이건 누구의 기분이지?
 
나는 기분을 사러 갔던
최초의 기분을 생각했다
 
사방이 유리인 가게에서
나는 갓 태어난 아이의 기분을 샀다
연애편지를 쓰고 있는 사람의 기분을 샀다
 
정확한 기분을 느끼고 싶었지만
기분은 언제나 다른 기분과 조금씩 섞여 있었다
 
안개 + 레몬 = 깜짝 선물에 대한 기분
냉장고 + 인형 + 시체 = 심야 택시를 기다리는 기분
미용실 + 아스파라거스 + 돌 + 향신료 = 백 년 동안의 고독을 다 읽은 기분
 
어떤 기분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고 들었다
나는 자주 그런 기분에 휩싸였다
그럴 땐 서랍을 열어
달리고 있는 개의 기분을 삼켰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개의 기분은
근육으로 만들어졌다
주인으로부터 출발했다
자꾸 밖에 나가자고 졸랐다
 
불안과 볼링 핀이 쓰러지기 전에 집을 나왔다
도로 한복판에서 비둘기가 움직이지 않았다
죽음을 수행하려는 걸까?
 
나는 손끝이 베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엄지손가락을 빨자 비릿하게 피 맛이 났다
 
기분일 뿐이었는데
단지 기분일 뿐이었는데
어떤 기분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고 들었다
나는 자주 그런 기분에 휩싸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ITE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