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바다를 못 읽다/유안진 > 아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오늘
1,036
어제
545
최대
3,544
전체
348,708
  • H
  • HOME

 

[유안진] 바다에서 바다를 못 읽다/유안진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이창민 조회 2회 작성일 2025-06-16 08:08:18 댓글 0

본문

바다에서 바다를 못 읽다/유안진

바다에 와서 바다를 읽어봤다, 바다의, 망망함을 물빛을 물비늘을 깊이를 수평선을 파도를 해일을……, 물의 변신 물의 언어를, 물에 쓰이는 상형문자를,  해독할 수 없는 태초의 말씀을, 방대한 바이블을

태초의 언어로 된 태초의 경전
창조신의 말씀책을
알아 못 듣는 목소리로 갈매기가 읽고 가도
알아 못 듣는 목청으로 바람이 읽고 가도
나의 문맹(文盲)은
어느 구절에다 붉은 줄을 그어야 할지
어느 페이지를 접어두고
어느 대목을 괄호쳐둘지 몰라
바다에 와서 바다는 못 읽어도, 내가 알아낸 건, 바다야말로 하늘이라고, 하늘이기 때문에 읽어내지 못한다고, 밤이 되자 바다는 달과 별무리 찬란한 하늘이었으니, 아무리 올라가도 하늘밑일 뿐이던 그 높이가, 눈 아래 두 발 아래 내려와 펼쳤다니, 가장 낮은 데가 가장 높은 곳이라는, 어렴풋한 짐작 하나 겨우 얻은 것 같다.

-  『다보탑을 줍다』(창비, 200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ITE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