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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무] 빨래들만 즐겁다/이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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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33회 작성일 2025-05-30 11:28:2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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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들만 즐겁다/이재무

썰물 되어 빠져나간 귀성객으로
갑자기 가동 멈춘 공장 앞마당처럼
적막이 먼지처럼 내려 쌓이는
명절 오후 고시원 옥상 위​ 빨래들
소슬바람에 경쾌하게 춤추고 있다
주인들은 찬 돌 밑 가재처럼 허리
구부리고 혼곤한 낮잠에 취해 있을까
잔물결 이는 한강변 따라
돌아갈 때 놓친 철새처럼 어슬렁대고 있을까
밑줄로 너덜너덜한 책 뒤적뒤적
한 번 더 굵게 밑줄 덧칠하며
휑한 눈 핏발 세우고 있을까
한지 한 장 크게 펼쳐놓은 듯
새하얀 하늘에 제문 쓰며 나는 새 아래
무거운 몸 벗고 한가해진 빨래들
샤워기의 물줄기처럼 쏟아져 내리는
가을 햇살 뒤집어쓰고
제멋대로 나풀대며 잘 마르고 있다

-  『경쾌한 유랑』(문학과지성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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