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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무] 풍금/이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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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38회 작성일 2025-05-30 11:22:2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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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금/이재무

당신의 목소리엔 물기가 묻어 있었지요
낭하를 걸어나와 화단에 줄지어 피어 있는
봉숭아 채송화 칸나 깨꽃들을 어루만질 때
당신의 손길에 부끄러워 꽃들은 더욱 붉게 봄을
울었지요 하학종 소리,
솔숲 잔가지 흔들어 새를 날리고
밭둑, 소리의 손에 멱살 잡힌 풀잎들
불쑥 내미는 몸에 가슴 문지르며
가벼워진 책보 등에 메고
때 낀 손톱 깨물며 갈 때
"서울 가신 오빠는 비단옷감....."
바람에 채어 끊어질 듯 이어지던
당신의 부름 소리에 돌멩이 매단 듯
발길 무겁고 가슴 둠벙엔 뜻 모를 울음
차올랐지요.
돌아보면 집채보다 더 크고
무겁게 단신(短身)의 생애 덮어오던 그날의
어둠의 추억 속 홀로 빛났던
내 유일의 위안이었던 동반자
당신의 목소리엔 물기가 묻어 있었지요

-  ​『시간의 그물』(문학동네,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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