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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무] 비둘기/이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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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43회 작성일 2025-05-30 09:05: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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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이재무

저들은 삼십 년 전 성북동에서 쫓겨온 원주민의 후예들이다
산 속으로 가지 못하고 산지사방 흩어져 이산가족으로 살아오는 동안
퇴화된 날개, 꺾여진 어깨, 부은 다리, 비만의 몸으로 어찌할 수 없는 굴욕 견디며 산다
먼먼 조상 적 그들에게도 눈부신 비상이 있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추억이 양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콩알 대신 수은과 납으로 먹을수록 커지는 허기의 구멍 메운다
돌아갈 둥지가 없으므로 두꺼운 공기 딱딱한 바닥 배회하다가
고가도로 밑, 공원의 벤치 옆에 쭈그려 잔다
이 시대 가장 천박한 천덕꾸러기 되어
희망 없는 삶 되는 대로 꾸리다가
전선줄에 차바퀴에 발길질에 누군가 뿌린 독약에 비명횡사하면 그뿐
이제 그들에게는 회한도 절망도 없다
전락은 순간에 이루어지고 회복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어찌 저들이 새일 수 있겠는가

- 『시간의 그물』(문학동네,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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