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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무] 봄날은 간다/이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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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40회 작성일 2025-05-30 09:04:0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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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이재무

봄날 오후 투명한 햇살
이런 날은 저승의 안방에까지가
훤하게 보일 듯하다
물오른 신입생들의 통통 튀는 종아리
반짝이는 소음으로 세상은 청년이 된다
점심 거르고 전투처럼 치러낸 강의
내 달변의 혓바닥에 실린
진실의 질량은 얼마나 될까
불쑥 허기가 몰려와 몸, 휘청거린다
먼 곳에서 크고 작은 길들은
꼿꼿이 고개 쳐들고 어디론가 바삐
달리고 있다 내가 뱉어낸 그 많은
장식의 허언들은 붕붕거리며 긴 복도
서성이거나 휴게실 담배연기 자욱한
소음에 갇혀 날개 다친 나비처럼 비틀,
부유하고 있을 것이다
봄날 오후 햇살은 투명해서
이런 날은 맨살에 비단을 걸쳐도
아플 것이다
하지만 변한 것은 없다 밥그릇
비워내지 못하는 날이 늘어갈 뿐,
체중은 줄지 않고
누구의 안부도 그리 간절하지가 않다
꽃처럼 화들짝 피어나 한 순간의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저 웃음의 화원 속으로
아직도 겨울을 다 보내지 못한
두꺼운 몸 밀어 넣으며
물 밖으로 아가미 내민 물고기처럼
헉, 가쁜 숨 몰아쉰다
모든 게 봄날 투명한 햇살 탓이다

- ​『푸른 고집』(천년의시작,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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