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화/신철규 > 사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오늘
1,114
어제
1,147
최대
3,544
전체
364,279
  • H
  • HOME

 

[신철규] 세화/신철규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이창민 조회 26회 작성일 2025-06-30 15:58:13 댓글 0

본문

세화/신철규
 
  우리는 끝을 보기 위해 여기에 왔다
 
  흐린 수평선에 걸린 구름이 아랫입술을 깨물고
 
  서서 죽은 물
  하얗게 누운 비석
 
  외계에서 온 사람들
  우리는 서로에게 비밀이 되어
  서로 먼저 등을 돌리라고 재촉한다
  뒷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뒷모습을 들키기 싫어서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우리는 난민이 될 수 있을까
  마음속에 일어난 난을 피해 우리는 어디로 망명해야 할까
 
  어디까지 망가질지 몰라 두려운 사람들이 선을 긋는다
 
  감은 눈 속에서 다시 한 번 눈을 감고
  눈 속의 눈을 감고
 
  입 속에 갇힌 수백 마리 나비가 날갯짓을 하고 있다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 앞에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폭도가 된다
 
  서로의 얼굴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누워 있는 해골을 보았다
  얼굴에서 살이 없어지면
  모두 저렇게 표정이 사라질까
  텅 빈 웃음만 남기고
 
  서로의 고통스런 표정을 참아낼 만큼 그들은 사랑했던 걸까
 
  한없이 해변을 걷다 보면 결국 또 여기로 돌아오겠지
  여긴 벗어날 수 없는 한 덩어리의 땅이니까
 
  아이들은 모래사장에 나무 막대기로 그림을 그린다
  두고 온 집과 보고 싶은 사람들을
  윤곽만 남은 얼굴들을
 
  성급하게 식은 용암은 구멍이 많은 돌이 되고
  몸보다 앞서간 말들은 툭툭 끊긴다
  부러진 늑골 같은 구름들
 
  동굴의 입구에서부터 기어온 매캐하고 검은 연기를 피해 도망쳐 나온 사람들은 해변으로 끌려왔다
  그들의 눈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육지일까 바다일까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우리만 볼 수 있는 어떤 빛
 
  해변과 수평선 사이에 당신을 오래 세워두고 싶다
 
  무지갯빛 슬리퍼 한 짝이 파도의 끄트머리에 걸려 밀려왔다 밀려간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ITE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