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 빨간 풍선/신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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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풍선/신경림
- 죽산* 서거 50해가 되는 날에
아무렇게나 죽여 아무렇게나 묻은 곳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명당이다. 뒤로 굴참나무 상수리나무가 울창하고 앞으로 산책길이 나 있어 산책객이 한둘 지나고 있다. 이 명당 덕에 그가 사랑한, 그를 죽인 나라가 번창하나보다 이런 덕담을 주고 받으며.
차일 밑에서 도시락을 먹는 추도객들은 한결같이 늙었다. 서로 멀뚱히 보다가 오십년 세월을 걷어내고서야 주름과 백발 속에서 홍안의 젊은이를 찾아내어 반갑게 손을 내민다. 서로 살아온 세월이 너무 달라 건강밖에 주고받을 얘기도 없어서.
죽산은 죽어 무덤 속에 누워 있고 그를 따르던 젊은이들은 무덤 옆에 앉아 소주잔을 기울인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고 주름과 백발들은 은근히 말하고 싶어하는 듯, 하지만 세상은 너무나 달라져, 그래서 모두들 너무 외로워서.
눈 돌려 바라보는 무덤가 소나무에 산책객이 버리고 간 빨간 풍선 하나가 걸려 있다. 세상이 버린 무덤과, 세상에서 버려져 살아온 사람들과 산책객이 버리고 간 빨간 풍선 뒤로 뉘엿뉘엿 여름 해가 진다 조금은 슬픈 얼굴로.
* 죽산(竹山): 조봉암의 아호. 죽산은 1959년 7월 31일 평화통일을 주장한 것이 빌미가 되어 간첩죄로 처형당했다.
- 『사진관집 이층』(창비, 2014)
- 죽산* 서거 50해가 되는 날에
아무렇게나 죽여 아무렇게나 묻은 곳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명당이다. 뒤로 굴참나무 상수리나무가 울창하고 앞으로 산책길이 나 있어 산책객이 한둘 지나고 있다. 이 명당 덕에 그가 사랑한, 그를 죽인 나라가 번창하나보다 이런 덕담을 주고 받으며.
차일 밑에서 도시락을 먹는 추도객들은 한결같이 늙었다. 서로 멀뚱히 보다가 오십년 세월을 걷어내고서야 주름과 백발 속에서 홍안의 젊은이를 찾아내어 반갑게 손을 내민다. 서로 살아온 세월이 너무 달라 건강밖에 주고받을 얘기도 없어서.
죽산은 죽어 무덤 속에 누워 있고 그를 따르던 젊은이들은 무덤 옆에 앉아 소주잔을 기울인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고 주름과 백발들은 은근히 말하고 싶어하는 듯, 하지만 세상은 너무나 달라져, 그래서 모두들 너무 외로워서.
눈 돌려 바라보는 무덤가 소나무에 산책객이 버리고 간 빨간 풍선 하나가 걸려 있다. 세상이 버린 무덤과, 세상에서 버려져 살아온 사람들과 산책객이 버리고 간 빨간 풍선 뒤로 뉘엿뉘엿 여름 해가 진다 조금은 슬픈 얼굴로.
* 죽산(竹山): 조봉암의 아호. 죽산은 1959년 7월 31일 평화통일을 주장한 것이 빌미가 되어 간첩죄로 처형당했다.
- 『사진관집 이층』(창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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