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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4월 19일, 시골에 와서/신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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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회 작성일 2025-05-20 17:53:2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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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 시골에 와서/신경림

밤새워 문짝이 덜컹대고
골목을 축축한 바람이 쓸고 있다.
헐린 담장에 어수선한 두엄더미 위에
살구꽃이 피고 어지럽게
피어서 꺾이고 밟히고
그래도 다시 피는 4월.
나는 남한강 상류 외진 읍내에 와서
통금이 없는 빈 거리를 헤매이며
어느새 잊어버린
그날의 함성을 생각했다.
티끌처럼 쏠리며 살아온 나날.
돌처럼 뒹굴며 이어온 세월.
다시 그날의 종소리가 들리리라고
아무도 믿지 않는 밤은 어두웠다.
친구를 생각했다. 찬 돌에 이마를 대고
깊은 잠이 들었을 친구를
그 손톱에 배었을 핏자국을.
4월이 와도 바람은 그냥 차고
살구꽃이 피어도 흐느낌은 더 높은데
축축한 바람은 꽃가지에 와 매달려
친구들의 울음처럼 잉잉댔다.
진달래도 개나리도 피고
꺾이고 밟히고 다시 피는 4월
밤은 좀체 밝아오지 않았다.

- ​『여름날』(미래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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