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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해후/신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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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회 작성일 2025-05-20 17:51:3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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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후(邂逅)/신경림

​그 여자는 내 얼굴을 잊은 것 같다
정거장 앞 후미진 골목 해장국집
우리는 서로 낯선 두 나그네가 되어
추탕과 막걸리로 요기를 했다

​그 공사장까지는 백리라 한다
가을비에서는 여전히 마른 풀내가 나고
툇마루에 모여 음담으로 날궂이를 하던
버들집 소식은 그 여자도 모른다 한다

​변전소에 직곡으로 다니던
그 여자의 남편은 내 시골 선배였다
벅구를 치며 잘도 씨름판을 돌았지만
이상한 소문이 떠돌다가 과부가 된
그 여자는 이제 그 일도 잊은 것 같다

​메밀꽃이 피어 눈부시던 들길
숨죽인 욕지거리로 술렁대던 강변
절망과 분노에 함께 울던 산바람

​우리가 달려온 길도 그 노랫소리도
그 여자는 이제 다 잊은 것 같다
끝내 낯선 두 나그네가 되자고 한다
내려치는 비바람 그 진흙길을
나 혼자만 달려 나가라 한다

- 신경림, 『農舞』(창작과비평사,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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