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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춘향전/신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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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회 작성일 2025-05-20 17:48:5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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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신경림
 - 운봉에서

그날 이도령은 마패 대신 품속에
대창을 감추어 들고 왔다
헛간에서 사흘을 묵고
잃어버린 부대 찾아 산으로 되돌아간 뒤
여태껏 소식이 없다

세상에 천지가 변학도였지만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
볼때기 삼 년 술따르기 삼 년
어느새 춘향은 늙고

그날밤 이도령이 뿌린 씨앗은
머리 허연 중늙은이가 되었다
남원에서 춘향제가 열리는
사월 초파일이면

반야봉을 바라보는
동네 밖 돌장승의 큰 눈에서 뚝뚝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지는 까닭을
아는 이 이제 어찌
늙은 춘향이뿐이랴

* 운봉은 남원에 딸린 옛고을인데 이 고장에 전쟁으로 남정네들을 빼앗긴 아낙들이 어찌나 많은지 서천리에 있는 두 기의 돌장승까지도 남원에서 춘향제가 열리는 사월 초파일이면 뚝뚝 눈물을 흘린다는 얘기를 고로(古老)들은 한다.

-  『길』(창작과비평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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