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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효근] 콩나물에 대한 예의/복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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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8회 작성일 2025-04-06 21:53:3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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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에 대한 예의/복효근

콩나물을 다듬는답시고
아무래도 나는 뿌리를 자르진 못하겠다
무슨 알량한 휴머니즘이냐고
누가 핀잔한대도
콩나물도 근본은 있어야지 않느냐
그 위를 향한 발돋움의 흔적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하지는 못하겠다
아무래도 나는
콩나물 대가리를 자르진 못하겠다
죄 없는 콩알들을 어둠 속에 가두고
물 먹인 죄도 죄려니와
너와 나 감당 못할
결핍과 슬픔과 욕망으로 부풀은 대가리 쥐어뜯으며
캄캄하게 울어본 날들이 있잖느냐
무슨 넝마 같은 낭만이냐 하겠지만
넝마에게도 예의는 차리겠다
그래, 나는 콩나물에게
해탈을 돕는 마음으로
겨우 콩나물의 모자나 벗겨주는 것이다

- 복효근,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달아실출판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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