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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경] 운주사에서/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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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0회 작성일 2025-04-20 10:32:1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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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에서/박미경

운주라는 그 여자랑 배 한 번 맞고 싶었네.
먼 데서 헝겊 가방 하나 달랑 메고 와 배시시 웃던
볼우물 웃음이 고왔던 그녀.
저물어가는 저녁, 벚꽃 그늘 산등성이에 어룽지는 날
어쩌면 달빛을 닮은 꽃 그림자 슬그머니 꺼내
그녀 가슴팍 대롱대롱 목걸이로 달고도 싶어지는 시간.
그녀 닮아 아름다운 운주사로 떠나고 싶었네.
매표는 끝났어요. 들어가지 못해요.
주차장 앞 으슥한 곳. 그녀를 밀어 넣고
당황해하는 그녀 입술 한 번
제대로 훔쳐보고 싶었네.
부처들도 벌러덩 누워 한 세상 알콩달콩 지내는데
나라고 못하겠냐.
흰 앙가슴 속으로 쓰윽
손도 한 번 넣어 보고 싶었네
야비하게 또는 얍삽하게 그녀 스커트 자락 올릴 때
여기서는 싫어요. 우리 편한 곳에 가 누워요.
저기 저 와불처럼요.
그러는 그녀. 냉큼 내 것으로 가지고 말았네.
그녀 당장 옷 깃에 뭍은 풀잎마냥 떼어 버리고
딴 여자 팔짱 끼어 하히야호호
울먹이는 그 여자 울리고 말았다네.
그녀 홀로 떠나는 날
운주사 앞에 다시 가고 싶었네.
난 왜 이런 놈인지. 내가 살고 싶었던 건 너였다고
산정山頂의 와불처럼 입 다물고 싶었다네.
운주라는 그 여자에게

-  『슬픔이 있는 모서리』 (문학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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