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라연] 나팔꽃 피는 책/박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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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꽃 피는 책/박라연
붉고 푸른 내력
페이지마다 나팔꽃으로 번져
눈부시지만
오르는 길만 쥐고 태어나
한정 없이 오르며 사는 저 손을
욕(慾)이라고 읽어도 되나
줄이 끝나면 허공이라도 감아 오르는
저 간절함을 욕(辱)이라고 읽어도 되나
허공마저 툭, 놓아버리는
페이지를 넘겨야 할 때 부디
어디에든 걸려서
살아만 있으라고 조바심쳐도 되나
책 속의 손이라서
좀처럼 잡히지 않을 때 말라깽이
제 몸이라도 칭칭 감아 오르는
저 붉고 푸른 피에게
애독자로서
넓고 편한 옆길쯤은 일러줘야 하나
더 이상 오를 수 없어 다친 마음들을
대신 꽃피워 이른 아침 우울한 창문마다
환한 얼굴로 불 밝히려는 헌신으로
읽어줘야 하나
- 『빛의 사서함』(문학과지성사, 2009)
붉고 푸른 내력
페이지마다 나팔꽃으로 번져
눈부시지만
오르는 길만 쥐고 태어나
한정 없이 오르며 사는 저 손을
욕(慾)이라고 읽어도 되나
줄이 끝나면 허공이라도 감아 오르는
저 간절함을 욕(辱)이라고 읽어도 되나
허공마저 툭, 놓아버리는
페이지를 넘겨야 할 때 부디
어디에든 걸려서
살아만 있으라고 조바심쳐도 되나
책 속의 손이라서
좀처럼 잡히지 않을 때 말라깽이
제 몸이라도 칭칭 감아 오르는
저 붉고 푸른 피에게
애독자로서
넓고 편한 옆길쯤은 일러줘야 하나
더 이상 오를 수 없어 다친 마음들을
대신 꽃피워 이른 아침 우울한 창문마다
환한 얼굴로 불 밝히려는 헌신으로
읽어줘야 하나
- 『빛의 사서함』(문학과지성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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