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희] 꽃밭에서/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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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에서/박영희
봉선화 분꽃 피어 있는 꽃밭에서
스무살 시절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꽃밭 가득
온통 꽃들뿐이었습니다
꽃대도 이파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서른을 생각하니
피어 있는 꽃들 어느덧 나이를 닮아갑니다
진분홍 봉선화는 나비를 부르고
코스모스는 잠자리를 부릅니다
잠시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습니다
구름인 듯 바람인 듯
쓸쓸하게 흘러가는 마흔,
마흔을 생각하니 옛사랑의 그림자가
꿀벌들처럼 잉잉거리며 꽃밭 주변을 맴돕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쉰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예순이 되어버린 나는
꽃보다는 씨앗에 눈이 먼저 가는 겁니다
꽃 지는 건 두렵지 않으나
씨앗들 썩을까봐 장마가 염려되는 겁니다
오늘은
꽃밭에서 한 생애를 다 살아버렸습니다
- 『팽이는 서고 싶다』 (창작과비평사, 2001)
봉선화 분꽃 피어 있는 꽃밭에서
스무살 시절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꽃밭 가득
온통 꽃들뿐이었습니다
꽃대도 이파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서른을 생각하니
피어 있는 꽃들 어느덧 나이를 닮아갑니다
진분홍 봉선화는 나비를 부르고
코스모스는 잠자리를 부릅니다
잠시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습니다
구름인 듯 바람인 듯
쓸쓸하게 흘러가는 마흔,
마흔을 생각하니 옛사랑의 그림자가
꿀벌들처럼 잉잉거리며 꽃밭 주변을 맴돕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쉰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예순이 되어버린 나는
꽃보다는 씨앗에 눈이 먼저 가는 겁니다
꽃 지는 건 두렵지 않으나
씨앗들 썩을까봐 장마가 염려되는 겁니다
오늘은
꽃밭에서 한 생애를 다 살아버렸습니다
- 『팽이는 서고 싶다』 (창작과비평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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