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 개화산에서/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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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산에서/박철
히말라야를 다녀왔다는 한 사내가
껌을 밟고 섰듯 우렁차게 먼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낮은 산이 더 오래된 산이다
조용한 산이 높은 산이다
눈보라에 이것저것 다 내주고
작은 구릉으로 어깨를 굽히고 앉았으나
부러울 것 없네 손자 손녀도 우습게 매달리고
때론 사이클 탄 이가 우주로 떠오를 듯 달려나가기도 하니
언덕에 섰는 갈참나무나 자귀나무도 마음이 연해
별다른 벌레들 기어들지 않고
청설모며 족제비가 종갓집을 이루는 터
내가 오늘 먹을 걱정에 터벅거리며 산을 내려오자
산은 슬며시 나의 옷깃을 잡으며
곧 볍씨 뿌리는 들판이 될 것이라 귀띔을 한다
따뜻한 바람을 모아 군불 지피는
끝내 고향이 되어버린 아우 같은 산
머리 긁적이며 돌아보니 오솔길은 발장난을 치고
묵은 꽃향기 수북이 손등처럼 쌓여 있다
- 『작은 산』(실천문학, 2013)
히말라야를 다녀왔다는 한 사내가
껌을 밟고 섰듯 우렁차게 먼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낮은 산이 더 오래된 산이다
조용한 산이 높은 산이다
눈보라에 이것저것 다 내주고
작은 구릉으로 어깨를 굽히고 앉았으나
부러울 것 없네 손자 손녀도 우습게 매달리고
때론 사이클 탄 이가 우주로 떠오를 듯 달려나가기도 하니
언덕에 섰는 갈참나무나 자귀나무도 마음이 연해
별다른 벌레들 기어들지 않고
청설모며 족제비가 종갓집을 이루는 터
내가 오늘 먹을 걱정에 터벅거리며 산을 내려오자
산은 슬며시 나의 옷깃을 잡으며
곧 볍씨 뿌리는 들판이 될 것이라 귀띔을 한다
따뜻한 바람을 모아 군불 지피는
끝내 고향이 되어버린 아우 같은 산
머리 긁적이며 돌아보니 오솔길은 발장난을 치고
묵은 꽃향기 수북이 손등처럼 쌓여 있다
- 『작은 산』(실천문학,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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