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산에서/박철 > 바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오늘
803
어제
667
최대
3,544
전체
297,689
  • H
  • HOME

 

[박철] 개화산에서/박철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이창민 조회 31회 작성일 2025-04-08 18:44:50 댓글 0

본문

개화산에서/박철

히말라야를 다녀왔다는 한 사내가
껌을 밟고 섰듯 우렁차게 먼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낮은 산이 더 오래된 산이다 

조용한 산이 높은 산이다
눈보라에 이것저것 다 내주고
작은 구릉으로 어깨를 굽히고 앉았으나
부러울 것 없네 손자 손녀도 우습게 매달리고
때론 사이클 탄 이가 우주로 떠오를 듯 달려나가기도 하니

언덕에 섰는 갈참나무나 자귀나무도 마음이 연해
별다른 벌레들 기어들지 않고
청설모며 족제비가 종갓집을 이루는 터
내가 오늘 먹을 걱정에 터벅거리며 산을 내려오자
산은 슬며시 나의 옷깃을 잡으며
곧 볍씨 뿌리는 들판이 될 것이라 귀띔을 한다

따뜻한 바람을 모아 군불 지피는
끝내 고향이 되어버린 아우 같은 산
머리 긁적이며 돌아보니 오솔길은 발장난을 치고
묵은 꽃향기 수북이 손등처럼 쌓여 있다

​- 『작은 산』(실천문학, 201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ITE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