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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리] 고양이, 그 고독한 탄생 앞에서/박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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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31회 작성일 2025-04-06 22:35:2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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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그 고독한 탄생 앞에서/박규리

고양이가 새끼를 낳은 것이 분명하다
어디에 낳았을까 구경 좀 하려고 따라가면
고양이는 이빨을 드러내며 겁을 준다
멋모르고 근처를 얼쩡대던 강아지는 벌써
등짝에 피가 나도록 할퀴어버렸다
새끼만 낳으면 녀석은 뵈는 게 없다
그래, 가물거리는 두 눈을 부릅뜨고
어둠 속에서 홀로 치러냈을 그 뜨거운 공포와
황홀한 두려움을 생각한다
그 고독한 탄생 앞에 나는 목이 메인다
눈동자는 고통 속에서 더욱 형형하고
날선 발톱은 이제 다시
아무것도 놓지 않으리라
산고에 털이 다 빠진 녀석을 보며
고요히 내 가슴이 푸르게 멍든다
살아남은 것 외에
나의 생애는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냐
그래 스스로 새끼들을 앞세워
당당하게 올 때까지
눈만 퀭하니 치겨뜬 녀석을
다시는 따라가지 않기로 했다

 - 박규리,『이 환장할 봄날에』(창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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