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소리/나희덕 > 나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오늘
828
어제
667
최대
3,544
전체
297,714
  • H
  • HOME

 

[나희덕] 기적소리/나희덕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이창민 조회 29회 작성일 2025-04-14 10:29:42 댓글 0

본문

기적소리/나희덕

강의 허리를 가르며 기차가 지나간다
화물뿐인 생을 싣고
이따금 기적소리와 매연을 내뿜으며

저 기적소리마저 없었다면
이 도시는 얼마나 고요했을 것인가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강물은 그 무게가 힘겹다는 듯 일렁이고
낡은 철교에 핀 들꽃이 툭 떨어지고
사람들은 잠시 일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긴다
어디론가 실려가는 화물의 표정을 지으며

화물보관소 선반에 얹혀 있다가
다시 흔들리며 실려가는 화물, 화물, 화물들

사랑은 너무 멀리 있고
기적소리는 하루에 몇번씩 나를 울리고
"You are not what you own."
철교 벽에 누군가 붉은 페인트로 써갈긴 낙서처럼
내가 가진 것도 내가 아니고
다만 달리는 기차에 실려가고 있을 뿐

그런데 나를 누구에게 부쳐야 하나
머지않아 수취인 불명으로 되돌아올 화물 하나

- 『야생사과』(창비, 200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ITE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