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 아내 꽃/한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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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꽃/한승원
한여름의 저물녘 햇살 비낀 성긴 솜대나무 숲 속의 산 모기들이 ‘아따! 살집 부드러운 아주머니 반갑고 또 반갑네. 나하고 오늘 밤 함께 잡시다잉,’ 하고 흡혈하러 덤벼드는 죽로차 밭에서 차양 긴 모자 쓴 시인의 늙은 아내가 잡초를 맵니다.
그녀가 손수 덖은 차만을 상음하는 시인을 위해 가꾸는 차나무들, 스티로폼으로 만든 원통형의 앉을 것을 엉덩이에 붙여 줄로 감아 묶은 채 쪼그려 앉아 차나무 뒤덮는 바랑이풀 모시풀 씀바귀 육손이덩굴풀들을 뽑아냅니다.
시인의 아내가 어기적어기적 지나간 밭고랑에는 앙증스러운 차나무들이 詩語(시어)들처럼 줄지어선 채 붉어지는 하늘을 향해 가슴 펴고 달려온 저녁 바람에 우쭐우쭐 춤춥니다.
시인은 차밭 어귀에 선 채 얼굴과 팔뚝으로 덤벼드는 모기를 쫓으면서 철부지 소년처럼 ‘여보, 저물어지니까 오늘은 그만 하고 내일 하시지’ 하고 조르는데, 늙은 아내는 달래듯이 말합니다, ‘서늘한 김에 한 고랑만 더 매고 갈랑께 먼저 들어가시오. 산 모기가 보통으로 사납지를 않구만이라우.’
- 『달 긷는 집』(문학과지성사, 2008)
한여름의 저물녘 햇살 비낀 성긴 솜대나무 숲 속의 산 모기들이 ‘아따! 살집 부드러운 아주머니 반갑고 또 반갑네. 나하고 오늘 밤 함께 잡시다잉,’ 하고 흡혈하러 덤벼드는 죽로차 밭에서 차양 긴 모자 쓴 시인의 늙은 아내가 잡초를 맵니다.
그녀가 손수 덖은 차만을 상음하는 시인을 위해 가꾸는 차나무들, 스티로폼으로 만든 원통형의 앉을 것을 엉덩이에 붙여 줄로 감아 묶은 채 쪼그려 앉아 차나무 뒤덮는 바랑이풀 모시풀 씀바귀 육손이덩굴풀들을 뽑아냅니다.
시인의 아내가 어기적어기적 지나간 밭고랑에는 앙증스러운 차나무들이 詩語(시어)들처럼 줄지어선 채 붉어지는 하늘을 향해 가슴 펴고 달려온 저녁 바람에 우쭐우쭐 춤춥니다.
시인은 차밭 어귀에 선 채 얼굴과 팔뚝으로 덤벼드는 모기를 쫓으면서 철부지 소년처럼 ‘여보, 저물어지니까 오늘은 그만 하고 내일 하시지’ 하고 조르는데, 늙은 아내는 달래듯이 말합니다, ‘서늘한 김에 한 고랑만 더 매고 갈랑께 먼저 들어가시오. 산 모기가 보통으로 사납지를 않구만이라우.’
- 『달 긷는 집』(문학과지성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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