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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숙] 비망록 2/최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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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0회 작성일 2025-06-27 18:27: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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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망록 2/최영숙
- 마을버스를 기다리며

누가 남겨놓았을까
정거장 옆 낡은 공중전화에는
통화는 할 수 있으나 반환되지 않는 돈
60원이 있다
어디로 가야 하나, 나는
어디로도 반환되지 않을 것이다
이 봄

긴 병 끝에 겨울은 가고
들판을 밀고 가는 황사바람을 따라
부음은 왔다 어느 하루
민들레 노란 꽃이
상장(喪章)처럼 피던 날 너는
어지러이 마지막 숨을 돌리고
나는 남아 이렇게 안 오는 버스를 기다리며
떠도는 홀씨 환한 손바닥으로
받아보려는 것이다

저 우연한 단돈 60원이
생의 비밀이라면
이미 써버린 지난 세월 속에서
무엇과 소통하고 무엇이 남아
앞으로 남은 시간을 견디게 할 것인가
산다는 것이 통화는 할 수 있으나
반환되지 않는다는 것을,
반환되지 않는 것조차 남기고 간다는 것을

너는 알았을 것이다
나만 몰랐을 것이다 호주머니 속의 두 손처럼
세월이 가고 다시 이 자리에 섰을 때
무엇이 달라져 있을 것인가
나 또한 바람 속에 흩어져 있을 것이고
흩어진 자리에 민들레꽃 한두 송이
너를 기억할 것이다 안녕, 사랑아

- 『모든 여자의 이름은』(창비,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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