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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아지랑이/최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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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4회 작성일 2025-05-20 19:28:1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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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랑이/최승호

쑥내 풍기는 햇살 속에서
오래 전에 他界한 우리 할머니 같은
꼬부랑할머니가 냉이를 캐고 있었다
어른거리는 아지랑이
이미, 많은 내 숨결은
나 아닌 숨결이 되어버렸다

정오 무렵, 섬을 가로지르다
평지처럼 밋밋해진 무덤을 밟고 서 있는
수염 긴 염소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나를 들여다보는 듯한 기묘한 느낌!
길 위에서의 우연들
엉성한 거미줄처럼 찢어질 인연들
악연이든 우연이든 필연이든
내가 그 무슨 緣에도 속하지 않는 날이 있을 것이다

밋밋한 무덤 위에 우뚝 선 염소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뱃속에서 꺼낸 풀을 다시 우물우물 씹으면서
당신은 뭐요? 라고 묻는 듯 나를 쳐다본다
그 뿔난 머리 너머에서
어른거리는 아지랑이
드넓은
숨결의 飛天像

-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열림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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