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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호] 저수지에 갔었네/길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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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44회 작성일 2025-04-12 19:14:3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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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에 갔었네/길상호

날이 풀리기 시작한 오후
그 저수지에 갔었네

허름한 식당 뿌연 창을 통해
나룻배 한 척 출렁이고 있었네
빈 배의 노를 저어
저쪽 산기슭에 가 닿는 상상을 하다
얼음 벌판에 막혀 돌아와 보니
산이 제 그림자 모서리를 깨뜨려
이쪽으로 밀어 보내 놓았네

그림자는 지난 계절 산이 모아 둔
고통스런 마음들이었네
나뭇가지에 긁힌 산새의 가슴이며
음지에 말라 간 풀포기의 뿌리며
힘없이 떨어지던 나뭇잎의 이별까지
산은 제 뒷모습 속에 감추고
이 겨울 얼음 속에 삭혀 내고 있었네

물결이 얼음 조각 핥아 녹여 내는 동안
내 가슴에도 언 그림자 몇이
시린 걸음으로 걸어 들어왔네
호-호- 입김을 불어 보아도
쉽게 녹지 않는 그림자,
내 가슴 가장자리에도 살얼음
얼고 있었네

-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문학세계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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