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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고흥/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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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39회 작성일 2025-04-08 09:59:2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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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김용택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바다에 닿은 비탈 밭에는 파들이 파랗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언덕에 자리 잡은 작은 초등학교 종소리가 바다로 퍼졌습니다. 친구는 그 학교 선생이었고, 나는 그 친구 하숙집에서 며칠 묵었지요. 아침저녁으로 밥상에는 꼬막과 쪽머리 지은 쪽파가 올라왔습니다. 하얀 꼬막 껍질들이 돌담 위나 돌담 아래 쌓여 있기도 하고 마당에 등을 보이며 하얗게 박혀 있기도 했습니다. 상에 오른 쪽파의 하얀 머리와 똘똘 만 푸른 파줄기와 마당 여기저기 흙 속에 박힌 하얀 꼬막들이 눈에 선합니다. 며칠이었는지 몇 밤이었는지 나는 거기서 지냈고 밤에는 파도 소리에 잠이 깨어 뒤척였습니다. 내 마음과 몸을 어디 내려놓을 수 없었던 스무 살 젊은 날이었습니다

친구가 학교에 가면 나는 바닷가를 돌아다녔습니다.
손 내밀면 손에 잡힐 듯, 눈 들면 눈에 닿을 듯한 마을 앞 작은 섬에도 파가 파랗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남쪽으로 이울어진 작은 섬, 몇 채의 초가집 마당가 검은 바위에 파도가 가만가만 가 닿는 모습 때문에 나는 눈물이 나려고 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오래오래 앉아 땅에 박힌 흰 꼬막 껍질 속에 담긴 흙들을 손톱 때를 파듯 파고 있었습니다. 그 바닷가에 두고 온 내 외로움이, 쓸쓸함이 지금도 파뿌리 끝에 가 닿고 있겠지요.

1970년 어느 봄,
그립습니다.

 - 김용택, 『그래서 당신』(문학동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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