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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짜디짠 잠/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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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54회 작성일 2025-04-06 16:34:4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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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디짠 잠/김선우

동안거 끝낸 스님네와 차를 마신다
안거할 곳 없는 내 겨울잠은
새 발자국 모양의 가지 끝에서 천일염을 만든다
찻잎이 너무 많았는지
묵상이 너무 길었는지
진하게 우려진 차 한모금
차가 짭니다. 한스님이 입을 연다
짭니까 차 달이던 스님이 나를 보고 물으신다
독하다고 해야 할지 쓰다고 해야 할지
차맛 하나를 두고 오만가지 생각을 짚어보다가
짜군요 내가 대답한다
하늘의 구름에도
구름을 길어올린 나무뿌리에도 염분이 있어
차나무의 겨울잠은 아찔하게 짜고
새순을 따는 순간 어미로부터 떠나는 잎새의 절박함에도
찻잎이 덖어지는 순간의 설레임에도 염분이 있어
눈물 같은 맛,
내가 떠나온 그곳도 드넓은 염전과 같았을 것이다
스님네와 짠 차를 마신다
아무런 미련도 슬픔도 없다고 생각한
마른 나뭇가지 끝에서
싱거운 경(經) 하나가 겨울잠을 자고 난 후

짜디짠 문자들이 내 목울대로 쏟아진다

- 김선우, 『도화 아래 잠들다』 (창비,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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