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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식] 이탈 이후/김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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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401회 작성일 2025-01-07 18:09:3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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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 이후/김중식
  1
  중심이 있었을 땐 적(敵)이 분명했었으나 이제는 활처럼 긴장해도 겨냥할 표적이 없다
  그러나 타협하지는 않겠다고 결심한다 빗방울을 퉁퉁 튕겨 보낸다 박살 낸다 그러다가
  이게 아닌데, 이미 몸 적신 주제에 이게 아닌데 중얼거리다가 매 맞기로 결심한다 빗방울이 굵어지고 우박도 내리자
  두들겨 매 맞아야 몸이 편할 것 같다며 머리카락 쥐어뜯으며 어찌해야 기억을 지울 수 있느냐 나는 왜 뻔뻔스러워지지 못하느냐 울부짖으며

  2
  우산도 뒤집어지면
  비에 젖네
  젖은 우산에 내리는 비는
  쌓이네

  비여
  사무친 이를 적시지 마라
  비참의 방둑이 무너지네
  객혈을 하네

  흐르는 건 흐를 뿐
  흐르면
  상처의 바닥이 아플 뿐
  참을 수 있으나
 
  흐르다가 뒤돌아보면
  젖은 남자의 피가 쌓이네
  쌓이네
  잊고 싶어서 못 잊은, 시뻘건, 순결.

  ​_《황금빛 모서리》(김중식, 문학과 지성,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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