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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가위눌리다 도망 나온 새벽/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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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387회 작성일 2025-02-05 10:23:5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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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눌리다 도망 나온 새벽/김민정

 나를 잠재우는 낯익은 약병들, 태양약국 약봉지들
 선반 위에 그대로 멈춰 있네
 물컹물컹 녹아내리는 나른한 시간
 괘종시계의 굉음은 꼭 한 박자씩 더디 울리지
 그래도 걱정 없네 나 이제 영원히
 추수 때의 들판처럼 황금색의 잠을 잘 터이니
 계산된 알람일랑 끄거나 내던져도 좋아
 
 손톱이 없는 손가락 손가락이 없는 손
 손이 없는 팔목을 휘두르며 시방
 보이지 않는 잉크가 편지를 쓰고 있을 거야
 언젠가 내가 부탁했던 일이지
 내 꿈은 지상 모든 꽃모종에 껌을 씹어 붙이는 일
 내 꿈은 세상 모든 인큐베이터에 사제 폭탄을 장착하는 일
 설사 내 자궁에서 근종 덩어리 하나 자라고 있다 한들,
 
 밤새 쓰레기통을 뒤지던 쥐들과 그
 뒤를 쫓던 고양이들 죽어 나자빠져 있네
 쥐약을 놓다 때론 그 약을 먹고
 거품을 문 사람도 있어
 핑계 없이도 사방천지 무덤들은 늘어가고
 
 저벅저벅 나는
 저들끼리 참 사이좋은 무덤,
 무덤들 사이를 걸어보네
 형체 없는 꽃향기에 취해 드라이플라워,
 드라이플라워처럼 말라가는 육신과…… 오오
 욕정처럼 끝끝내 말라붙지 못하는 머리카락
 내 몸을 담요처럼 둘둘 말아주네
 칼집에 들어가는 칼처럼 꼭꼭 껴안아주지
 
 나 여기서 살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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