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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형렬] 사진리 대설/고형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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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398회 작성일 2025-02-23 12:10:2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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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리 대설/고형렬

하아얀 눈이 마당을 여드레 내리고 나니
눈이 정말로 무서워졌다. 아흐레 만에 날이 드니
눈물이 나는 오후였다.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 선처럼
해도 우물우물 빨리 서산으로 지려 하고
마을은 오랜만에 빨간 불빛들을 서로 볼 수 있었다.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친구들의 말소리도 들려왔다.
언제나 어둡고 높고 촌스럽기만 하던 설악산이
시진리하고는 바닷가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산이
그날 처음으로 야산이 되는 것을 보았다.
우리하고는 아무일도 없는데 거만하게 하늘로 솟았던
산이 순하디순해져서 고요하기 이를 데 없었던 것이다.
육백 미터 팔백 미터 산과 수백 미터 낭떠러지가
눈으로 평지가 된 것처럼 신지붕이 야트막하였다.
몇개의 봉우리만이 흐릿한 윤곽을 드러내고
산은 정말 별볼일없는 어촌일지라도 인가 쪽으로 다가왔다.
뽀야니 떡가루를 뒤집쓰고고 잠든 눈 속에 내려앉아서
눈주목 눈측매 눈잣나무가 아주 눈에서 사라져버렸다.
모든 형상과 색이 파묻혀 어떤 움직임도 소리도 없었다.
세상은 사진리에서 그 끝까지가 고요, 고요였다
공룡 청봉이라는 것들이 눈앞에서 잡힐 듯하였다.
후우 세게 입김을 불면 날아가버릴 듯이 작아져서
마치 산을 사진리에서 멀리로 내려다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날 오후 이후 이때까지 설악이
그처럼 낮아지고 아름다운 적을 본 적이 없었는데
해 지고도 한참을 설광 때문에 새벽 같았다.
발간 등불과 후레쉬 불빛이 흔들리기 시작하던 마을
사진리는 그제서야 사람 사는 마을이 되었다.
아흐레 동안 산이 눈 속에 파묻혔던 것이다.
그런데 놀라은 사실은 그날 내다본 동해는
무슨 일인지 물 속에 다니는 고기 소리가 날 듯이
맑게 개인 하늘 아래 호수처럼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눈도 한 송이 쌓이지 않고, 그만으로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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